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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05 07:57
사랑을 원하는 여자의 편지는 항상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글쓴이 : booiijr2517
조회 : 0  


오늘도 언제나 그랬듯이,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되어버린 일상마냥 밤을 샜다.

할 일은 너무나도 많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가끔씩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시간이 멈춘 것 마냥, 언제나 그랬고 항상 검게 있을 것 같은 하늘이 오늘도 어김없이 다섯시에서 여섯시 사이 정도 어스름히 밝아왔다.

나는 오늘도 언제나 그랬듯이 효율을 찾는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다.

책상 정리를 하며 오늘부터 앞으로의 하루 할당량을 만들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계획표를 오전중으로 만들 거라 생각한다.

그 때, 내 책상 구석에 있는, 손바닥 반 정도 되는 예쁜 편지봉투가 눈에 띈다.



그녀와 나의 만남은 내가 군대를 전역한 후에 이루어졌다. 그 당시 학기가 시작되고 나와의 만남이 잦아지자 그녀는 내게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제대 약발이라고 해야 하나, 당시 나는 모든 일을 무대포적으로 밀어부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랬다. 나는 니가 남자친구가 있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보기 겨우 몇십 분 전, 과방에서 옆에 동기놈이 자는 와중에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그랬다. 나는 니가 내게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연애 초기, 나는 연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불도저처럼 밀어부치고 있었고, 그런 내 곁에는 나처럼 연애를 방금 시작한 동기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시덥잖은 정보를 공유해 가며 밤을 새서 이벤트랍시고 뭔가에 몰두해 있었다. 그래, 그때는 그랬고, 그만큼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었다.

미숙했지만, 열정적이었고, 실패는 생각지도 않은 채 세상을 내 중심으로 보며 일처리를 진행하였다.

우리는 병 속에 하루에 한 번, 정말 머리를 쥐어 짜 쓴 편지를 하나씩 집어넣어 포장하여 각자의 연인들에게 주기로 계획했지만,

그 계획을 실행한 사람은 나 혼자였으며, 나중에 나와 친했던 한 녀석은 내게 자신이 샀던 편지지를 중고로 팔기도 하였다.

그렇게 되도 않는 이벤트를 우왕좌왕 해가며 커플 데이트를 하던 나날에는 정말 시간이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고는 있지만 자세히 보려고 하면 안보이는 것처럼 정신없이 흘러갔다. 찰나는 존재했지만 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기들이 하나씩 헤어지며 내게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들의 말을 듣긴 했지만 헤어짐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연인은 관심도 없는 결혼에 대해 얘기를 꺼내고, 자녀계획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 시점이.

그녀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나도 곧 시들해져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과대를 맡고 있던 나는 성인의 날에 다른 학생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소정의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그녀 생각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무엇을 주면 좋을까 고민하다 결국에는 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눈에 차지 않았다. 그 무엇도 좋아보이는 것이 없었다.

과 행사를 준비하느라 힘든 척, 바쁜 척 열심히 엄살을 떨며 그녀와 밤늦게 산책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일이 되던 날, 나는 장미를 주려고 했지만 평범한 장미는 주기 싫었다. 그래서 비누로 된 장미를 샀다.

취향이 독특한 나는 평범한 색은 싫었다. 붉은색 장미는 흔해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비누장미 꽃다발을 샀다.

하지만 이것은 내 합리화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계획한 날보다 하루 늦게 주문을 했을 때, 재고가 있었던 분홍색과 노란색, 보라색, 그리고

푸른색의 장미 중에서 분홍색과 보라색을 선택하여 분홍색 장미 속에서 보라색 장미가 빛을 흡수하며 점점이 있게 해달라고 주문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의 기차를 타기 전, 나는 택배기사와 전화를 한다고 바빴다.

그녀에게는 기차가 연착한다고 하고, 나는 택배기사와 전화를 하며 얼마만큼 늦을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늦는다고 했을 때도 순순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다급한 내 목소리에서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택배기사에게 받은 상자 안에는 내가 주문한 대로의 비누장미가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차지 않았다.

기차에 타 꽃다발을 꺼내어 다급하게 분해하고 재조립했다. 보라색 꽃을 한쪽으로 몰아 그럴듯하게 재배치하는 동안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그녀가 기다리는 지하철역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며 누가 보든 말든 꽃을 꺼내어 등 뒤에 숨겼다.

그렇게 그녀에게 전달된 꽃은, 그녀의 값을 매길 수 없는 미소 앞에서 단숨에 빛이 바래버렸다.



이후 우리는 상대가 어디 있든지 상대와 함께 했다. 그녀가 알바하는 데 찾아가기도 했고,

항상 이동하던 나를 위해 하루는 그녀가 오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매일 붙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점점 서로를 자연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권태기 따위는 없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 안가봤던 카페를 가기 시작했고, 그녀는 내가 데빌 메이 크라이를 하는 모습을 가끔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자연스러워진 우리는, 점점 서로의 자취방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고,

자기 전에 각자 샤워를 하고 같은 침대에서 잠은 자지만, 관계를 맺지 않는 나날이 지나며 인지하지 못한 채 1주년이라는 시간을 맞이했다.



1주년. 연인들에게는 아주 간질간질한 그 단어. 거창하고 특별한 날이 될 거라는 상상과는 다르게 그날은 다른 여느 날과 다름 없는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이 끝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말없이 걷고, 술을 마셨다.

사실 나는 성욕이 많은 편이고, 자위도 늦은 나이에 시작해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성관계는 스틱스 강 건너 미지의 것처럼 먼 존재였다.

술을 마시고, 서로의 가정사에 대해 말을 하며 나는 술에 취한 채 처음으로 울었다. 어린애같이 우는 나를 그녀는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우리는 그날 밤 그녀의 자취방에서 처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사람이란 이상한 존재이다. 아니, 내가 이상한 존재이려나.

성욕은 많지만 이상하게 그녀와 하는 성관계보다 자위가 편했다. 그녀는 한편으로 내게 그냥 내 곁에 있는, 공기만큼 자연스러운 존재였지

성욕을 풀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아니, 내가 그녀는 도구가 아니라고 인식했다.

1주년이 지난 이후 내가 해주던 이벤트가 갑자기 멈췄다. 잡은 물고기 어쩌구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인지조차 못했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그녀의 애정표현이 갑자기 늘기 시작했다. 시도때도 없이 까치발을 하고 내 입술을 가져갔으며,

헤어질 때는 버스정류장에서 아, 그래, 여름에는 차마 안고 있지는 못했지만 겨울에는 꼭 붙어 있었다.

나는 추위를 잘 타지 않지만, 그녀는 잘타기에 나는 항상 한여름만 아니면 옷을 과하게 레이어드해서 입기 시작했고,

겨울에는 항상 큰 옷을 입어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감싸 주었다.

실용성으로만 옷을 입던 내가 점점 보기 좋은 옷을 입기 시작했고, 치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녀의 치마입는 빈도가 늘어갔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보이기 위해 신경쓰는 것들이 일상이 되어갈 무렵, 나는 그녀에게 큰 잘못을 했다.



와... 이거 글을 쓰다보니 정말 끝이 없군요. 책상정리하며 발견한 두 장의 편지가 이렇게 한시간 동안 글을 쓰게 만들다니...

일단 할 일좀 하고 있다가 다시 쓰겠습니다.